ARTICLE/ 비평 — 1984.11.01 조선일보

새 빌딩의 大型 간판

Interviews — 5 Min Read

The Creative Process of Richard Vora

趙英濟

<서울大교수/視覚디자인>

새 빌딩의 대형 간판

요즘 서울에 많은 새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다.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빌딩들,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의 설계로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빌딩들. 이 중에는 시민들에게 외관의 아름다움과 조형 공간의 독창성을 음미케 하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판에 박은 듯 조형의 특성도, 기능의 특성도 없는 빌딩들도 자꾸 들어서고 있다.

물론 재개발 이전에 비하여 빌딩 주변에 협소하나마 녹지대 등 시민의 휴식공간이 생겨나는 것은 퍽 다행스럽다. 그러나 새 빌딩이 거의 완성될 단계에서 시민들을 시각적으로 놀라게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20층, 30층의 고층건물 한쪽 벽을 가득 가로지르는 육중한 초대형 문자로 된 빌딩 이름이나 회사 이름이 그것이다. 북악스카이웨이나 남산에 올라가서도 자기빌딩은 찾아낼 수 있다는 자랑인지는 몰라도, 시각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보행하는 시민과는 관계도 없는 대형간판을 볼 때마다 공해라는 생각이 든다. 설계자가 당초 의도한 건물의 형태나 비례감은 이 무모한 문자의 배열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시민들 역시 이 시각적 무뢰한에게 상을 찌푸리게 된다. 이러한 시각공해는 시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빌딩 개관행사 때의 아치는 20년 전과 전혀 달라진게 없다.

새 건물의 분위기에 걸맞을 새로운 아이디어나 새로운 디자인이 선보일 만도 한데, 예나 지금이나 무기력하게 타성에 젖어있다. 이는 비단 새 건물의 개관 때만은 아니다. 기업의 몇십 주년 기념행사, 새 업무 개설을 알리는 금융기관의 현수막, 국제행사 참가자들을 환영한다는 호텔 정문의 현판 등등 옥내외를 막론하고 각목에 광목을 씌워 원색으로 치장한 요란하고 치졸한 장식들도 가히 시각공해의 원흉이라 하겠다.

각종 간판의 무절제한 고함으로 얼굴이 없어진 낡은 건물들의 대책도 문제지만, 여건과 환경이 나아진 새 빌딩의 건물주나 입주자들의 사고와 안목이 전혀 새로와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따금 활자 매체에서 본 ‘조형감각이 뛰어난 문화민족’이라는 글들이 퇴색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