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비평 — 1984.11.09 조선일보
심벌마크와 文化척도
趙英濟
<서울大교수.視覚디자인>
심벌마크와 문화척도
세계 각국은 나라마다 국기나 국장 등 조형적 상징물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상징물들은 밖으로는 국위와 국력을 표상하고, 안으로는 국민들에게 애국심과 단결의 대상이 된다. 중세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을 만들어 가문의 명예와 긍지를 나타냈다. 때로 이런 상징물들은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되어 개인의 무절제를 제어하는 구속력도 발휘했다.
이처럼 과거의 심벌마크는 어떤 주체의 자기만족이나 과시의 상징으로 이용됐다. 그러나 정보화시대에 접어든 오늘날에는 이런 심벌들이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을 발휘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단체나 기업의 심벌마크는 그 단체나 기업의 이미지 향상과 홍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70년대 후반부터 우리 기업들도 해외진출이 활발해졌다. 기업의 심벌마크나 독창적인 상표를 단 우리 상품들이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 그런데 간혹 대기업의 심벌마크가 상대국의 마크와 유사하다 하여 말썽이 생긴 사례가 있다. 이는 상표법상의 문제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으나, 국가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손상을 입힌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나라의 기업이나 상표의 디자인은 그 나라 문화 수준의 척도를 가늠하는 평가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들은 아직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어떤 기업이든 사업계획을 세울 때는 면밀한 조사와 치밀한 검토를 거듭하지만, 막상 그 기업의 이미지를 만들고 상품의 가치를 결정해주는 디자인에는 소홀한 편이다. 어떤 기업에서 심벌마크를 3~4일 혹인 10여 일 만에 완성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는 당혹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는 비단 심벌마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기업의 해외용 판촉물 디자인 또는 해외광고디자인에도 해당 된다는 점을 기업들이 자각해야 한다. 기업은 외화수입 못지않게 한 나라의 문화 사절 역할도 한다는 점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
